Cozy - Ca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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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5. 3. 30. 20:36
작성자
헤스터

 
床前明月光 머리 맡의 밝은 달빛
疑是地上霜 땅에 내린 서리인가.
擧頭望明月 낯을 들어 산에 걸린 달 바라보다
低頭思……. 고개 숙여 —을 생각한다…….

 

이백(李白), 정야사(靜夜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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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사(師)에 그리워할 련(戀). 제 이름자에 쓰인 글자는 참 얄궂었다. 적어도 사련은 그리 생각했다. 어찌 아니한가? 어릴 적 조실부모하고 몸 뉘일 곳 찾아 떠돌던 소년을 거둬 세상을 가르쳐준 스승이자 어버이는 이름조차 밝히지 않고 숨을 거뒀으니, 그를 기릴 방법이라고는 물려받은 무공과 검법을 갈고닦아 이것이 내 스승의 유산이오, 하는 것 뿐이라서.
 
그리하여 사련은, 이십오 년간 쌓인 인생의 족적이 끝날 때에도 제가 스승의 얼굴 하나쯤은 기억할 줄로만 알았다.
 
 
무엇이 잘못이었지? 죽어가며 고민한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그 정도의 고뇌는 누구나 한다. 제 인생에 억울함을 품은 자라면 말이다. 사련도 그러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높은 경지까지 도달하여 시기 질투를 산 적도 많고, 든든한 뒷배가 없어 무시 당한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고고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왜냐?
 
 —련아야, 너를 미워하는 자들과 같지 말거라. 그것이 스승의 유언이었으므로, 사련은 평소 저를 못마땅히 여기던 인물들과 이 시대 강호 최악의 금지(禁地)로 취급되는 월무산에 가게 되었어도 받아들였다. 그것이 실수인 줄도 모른 채로.
 
아니……,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사람의 정이란 걸 믿어보고 싶었다.
 
 
기묘한 목소리는 잠들어가던 사련을 깨웠고, 생을 돌려주겠노라 말했다. 그것은 아직 어리고 분노한 청년에게 달콤하기 그지없었으니 그때부터 월무산에 속박된 자로서 일 년의 세월을 무수히 반복하게 되었음에도 단지 살아있음에 안도하려 했다.
그래, 점점 자신을 잃기 전까지는 말이다.
 
월무산이 부리는 망각의 술법은 사련에게도 덮쳐왔다. 달빛이 내리는 안개, 그 속에 불순한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제가 누구인지조차 잊고 헤매다 죽음을 맞는데, 하물며 계약이란 명목으로 붙잡힌 혼은 어떠할까?
 
 
일 년이 지나고, 사련은 무림맹으로 가는 길을 잊었다.
삼 년이 지나고, 사련은 저를 죽이려 한 자들의 모든 것을 잊었다.
십 년이 지나자, 사련은 스승의 얼굴과 목소리를 잊었다.
 
 
공포스러웠다. 두렵고 괴로우나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 또한 안개 속의 잘 꾸며진 일 년짜리 인형극의 일부가 된 기분이었다. 그랬기에 사련은 검을 휘둘렀다. 집을 짓고, 밭을 가꾸며, 잠을 자면서 자신이 사람임을 잊지 않으려 했다. 일검에 스승을, 이검에 무림을, 삼검에 중원을 상상하면서 휘두르고 또 휘두르다보니 초절정이던 경지가 화경으로, 화경이던 경지가 현경으로 올랐다. 남겨둔 것은 생사경, 오직 모든 고뇌를 떨치고 벽을 넘어선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지고의 경지였다.
 
 
그렇게 현경에 오른지도 어느덧 십 년이 지나고, 제가 산에서 구해 내려보낸 이들의 수가 수백을 넘어갈 무렵, 크게 다친 아이가 눈 덮인 산에 쓰러졌다.
 
아이를 데려와 돌보면서 사련은, 그저 이 아이도 며칠 묵게 하고 내려보내야지— 하는 정도의 마음일 뿐이었다. 작은 아이, 천혁진이라 이름자를 밝힌 소년이 구배지례를 올리며 스승으로 모시게 해달라 청하기 전까지는.
 
 
스승님, 하는 부름을 들으면 어색했다. 이제는 제가 생전의 스승보다도 경지가 높고 지나온 세월이 길 터인데, 여전히 유언 한 문장만 선연히 기억나는 얼굴 모를 스승이 새삼 존경스러울 줄이야. 그럼에도 사련은 최선을 다했다. 제 첫 제자이자 아마도 마지막 제자일 이가 안개와 달빛에게 먹히지 못하도록 스스로 더 많이 움직이고, 많이 기억하며 살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사련은, 혁진이라는 아이를 너무나 아끼게 되어버렸다.
 
 
아아, 떠나지 말았으면. 아니, 떠날 때에 나도 데려가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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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건 동전 목걸이가 찰랑인다. 머리를 틀어올린 비녀는 손때를 타 반질거렸다. 먼지가 쌓이지 않게 매일 청소하는 방의 풍경은 팔 년 전의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사련이었다. 어떻게든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려 애쓰지 않게 되었다. 단지 어제처럼, 그제처럼 집과 산줄기와 거목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서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바라본다. 하지만 기억은 흐려지지 않았다. 적어도 혁진이 있던 오 년의 세월만큼은 굳건하게 지켜내어서, 네가 돌아오리라 약조한 날이 언제일지도 모르는 주제에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돌아올까? 돌아올 거야. 그리 의심과 위안을 반복하는 날이 길어진다. 지쳐간다. 지독한 외로움이 온몸을 좀먹고, 유일하게 남은 눈동자의 색마저 앗아가려 하지만, 그럴 때면 비녀 끝으로 손바닥을 찔러가며 정신을 차린다.
 
 
기억해.
기억해,
기억해⋯⋯,
 

강줍사님 CM

 

어차피 너 아니면 나를 이곳에서 꺼내줄 이가 없으니⋯⋯, 그래, 차라리 널 기다리다 이리 망부석으로 남아도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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